Stories of MY Life...and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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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읽고 나서...

이 작품은 과학소설로 분류하기 좀 애매하다. 그렇다고 판타지소설로 분류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 이건 SF(Science Fiction 과학소설)이 아닌 SF(Speculative Fiction 사변소설)이라 불러야 할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아시모프가 반전의 묘미를, 클라크가 하드SF를, 렐라즈니가 신화적인 개성을 떠올리게 한다면 테드 창은 독자에게 익숙한 기술을 약간 뒤틀어 전혀 다른 평행세계를 만들어 내는 특징이 있는 듯 하다.

이 책에 실려있는 중단편들의 주인공들은 자신과 자신주위의 세상에 대한 인식이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 인생이 달라진다(라고 우겨본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구조에 대한 깨달음을 얻거나(바빌론의 탑), 세상의 진리-패턴-을 깨닫거나(이해), 세상의 모든 지식들의 기반이 무너지거나(영으로 나누면), 새로운 인식론을 얻어 삶이 달라지거나(네 인생의 이야기),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새 인류를 창조한다거나(일흔두 글자), 삶의 마지막 순간에야 신을 사랑하게 되지만 신에게 버림받는다거나(지옥은 신의 부재)...원제인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는 단순히 Story of your life-네 인생의 이야기-를 대표작으로 나타내는 것 외에도 그 외의 주인공들의 인생의 변화를 이야가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은 좀 오버일까나?


바빌론의 탑 Tower of Babylon
우리가 사는 지구와 마찬가지로 둥근 세상의 이야기. 단, 사고의 방향을 90도만 돌려라. 180도가 아니다! SF무크지에서 보고 반해서 이책을 사게 만든 주범(?)이지만 다른 작품들과 같이 있으니 좀 평범해 보인다(그만큼 다른 작품들이 훌륭하다는 이야기). 후반부에 물이 쏟아질 때 결론을 예상해버렸다는 자랑도 빼먹으면 섭섭하지. 푸하~

이해 Understand
우연히 천재가 된 사람이 겪는 머리속 사고의 변화를 이렇게 자세하게 그려내다니. 이거 혹시 본인의 실화...? 어떻게 보면 앰버 연대기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일흔두 글자 Seventy-Two Letters
명명학, 열역학과 엔트로피, 카발라, 골렘, 연금술, 인공수정, 노동자와 자본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재귀(recurrence), 그리고... 창조주.
이 단어들을 도가니에 넣고 푸~욱 삶아내니 이런 맛있는 진국이 나왔다. 단, 주방장의 손맛이 특별해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되지만.

지옥은 신의 부재 Hell is the Absence of God
젠장. 무교론자인 나로선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상상을 해보면 암울하다. 하지만...재미있다.

영으로 나누면 Division by Zero
만일 수학자인 당신이 1 = 2 라는 사실을 증명해버린다면?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지식의 근본이 무너져내리면 정말 끔찍하겠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미 머리속에서 그 생각은 떠나지 않고...와중에 주위사람은 "그게 뭐 어때서?"라며 뭐가 중요하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정말 미칠 노릇일거다.
소재도 좋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1,1a,1b, 2,2a,2b...로 진행되던 특이한 전개방식이었다. 1 장은 그 장의 소개(문헌조사)에 해당하고 이어서 1a(2a, 3a, ...) 에서 생물학자인(아마도 수학에는 문외한인듯?) 주인공의 남편의 이야기가 ( 1 ), 1b(2b, 3b, ...)에서 주인공인 수학자의 이야기가 ( 2 ) 차례로 전개된다. 1a 와 1b 에서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두사람의 입장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마지막 9a=9b에서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따라서, ( 1 = 2 ) 임은 증명되었다. Q.E.D. --_--;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
인식론의 변환! 실린 단편들 중 최고라 생각하는 작품.(물론 다른 것들을 평가절하하는건 절대 아니다)
중요한 물리적 원리의 의미들을 상당히 쉽게 설명한 서적으로써 일반인들이 보기 좋은 참 친절한 물리학 서적이라 하겠다...아, 이거 SF소설이었지? ^__^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물리현상은 인과관계를 고려하여 매 순간순간의 현상과 결과로부터 다음 순간의 상태를 알아내는 것을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만일 어떤 시스템이 가져야 할 상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목적론적인 사고를 가진 인간(또는 외계인)이 있다면? 그리고 그 생각의 범위가 기본적인 물리현상이 아닌 모든 사고에 적용된다면 미래와 과거 역시 "알게" 되는 것은 아닌가?
어떻게 생각하면 동양사상을 떠올릴만도 한데... 그쪽은 문외한이니 패스.

중간에 물리학자가 설명하는 내용중 일부를 발췌해 보면,
"...모든 물리 법칙은 변분 원리로 기술될 수 있다...인류는 인과적 맥락에서 생각하는 편을 선호한다... 운동 에너지나 가속도처럼 인류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물리적 속성은 모두 고정된 시점에서 어떤 물체가 가지는 성질이다...어떤 순간이 다음 순간을 낳고, 원인과 결과는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연쇄반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헵타포드(외계인)들이 직관적이라고 간주하는 물리적 속성들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할 경우에만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것은 사건의 목적론적인 해석으로 이어진다...만족시켜야 할 조건, 최소화나 최대화라는 목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원인이 시작되기 전에 결과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캬~ 멋지다! 사실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다 보면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 보다 헴타포드식의 최대최소화식 사고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한 경우가 많다. 내가 하는 연구공부에서 대부분 변분법을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이 소설이 너무나 친숙하게 다가온다.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선택하기도 전에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결정해야 한다."라는 말에 대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고등학교때 나도 한적이 있다. 잠시 그 생각에 대해 고민하다가 '쓸데없는 생각말고 공부나 하자'라는 결론을 내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속하긴 했지. 물론 그때 그 생각을 계속 해왔다고 해서 내가 이런 글을 쓸 확률은 0으로 수렴하는건 인정한다.

사족1
나온김에 변분이야기 하나만 더. 내가 대학원에 와서 배웠고 지금도 내 연구의 기본이 되는 방법중 하나인 변분법은 간단히 말해 아~주 일반적인 미분방법이라고 할수 있다.(대학원에서나 배우는 내용을 소재로 쓰다니 테드창도 참 대단하다) 보통 시스템의 에너지를 변분(미분)해서 0이 되는 조건식을 계산하면 일반적으로 그 시스템의 안정적인 상태를 알 수 있다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인데...모든 물리현상은 안정적인 상태를 추구해 간다는 사실을 기본공리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접근방법이 아닌 F=ma와 같은 기본적인 방정식으로부터 계산을 해서 나아갈수도 있는데 두 가지 경우 모두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된다. 만일 두 결과가 다르다면? 앞에서 나온 <영으로 나누면>의 주인공과 같이 된다. 한마디로 X된다는 말이다.--_--;;


사족2

덧글

  • happysf 2004/11/25 20:15 # 삭제 답글

    흠... 지금까지 제가 읽어본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대한 평 중에서 가장 탁월한(!) 평이로군요. <당신 인생의 이야기>야말로 독자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그 수준이 천차만별로 읽힐 작품집인데, 크바시르님은 그야말로 "걸작"의 수준으로 읽으셨군요. 물론 서평도 "걸작"입니다.^^
  • 크바시르 2004/11/26 21:00 # 답글

    happysf // 써놓고보니 쑥쓰러워서 지울까말까 엄청 고민한겁니다. 지금봐도 지워버리고 싶어요.-_-
  • 바보새 2004/12/08 05:20 # 답글

    와앗. 트랙백 감사합니다! >_< 333 정말 훌륭한 평이에요! 저도 뭔가 써보고 싶었지만 역시 글발이 딸리다보니.. ㅠ_ㅠ
  • hilevel 2007/11/15 09:30 # 답글

    멋진 소설에 멋진 감상 잘 보고 갑니다. 백십프로 공감입니다. 네 인생의 이야기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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